
“뉴스에서 나쁘게 보였던 캥거루족, 라이프 스타일 중 하나로 보이길 바랐어요.”
지난해 10월 파일럿 방송에 이어 지난달 정규 방송으로 돌아온 MBC에브리원·MBN 예능 ‘다 컸는데 안 나가요’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스타들의 일상을 통해 솔직한 웃음과 공감을 선사하는 캥거루족 관찰기를 담은 프로그램이다. 매주 토요일 오후 8시 20분 방송되며 배우 박해미, 황성재 모자를 비롯해 래퍼 지조, 배우 신정윤, 인피니트 동우 등 캥거루 족 가족들의 일상이 공개돼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다 컸는데 안 나가요’ 연출을 맡은 전민경 PD가 지난 27일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부모에게 의존하는 젊은 세대인 ‘캥거루족’에 포커스를 맞춘 이유를 물었다.
전민경 PD는 “프로그램 기획할 때면 선배들에 많이 듣는 이야기가 ‘나 혹은 주변 이야기를 찾아라’고 한다. 저도 캥거루족이다. 예전엔 혼자 사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월세나 생활비 등의 문제로 본가에 돌아가는 친구들이 많더라. 나만의 일이 아니구나 싶어서 캥거루족에 주목하게 됐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전에는 캥거루족이라는 말을 뉴스에서만 들었다. 그런데 뉴스에 비치는 캥거루족은 다 그 개인이 나쁜 걸로 보였다. 특히 뉴스에서만 언급되는게 싫더라. 흔한 소재인데, 너무 묵직한 분위기나 죄책감이 담긴 단어이기 보다는 라이프 스타일의 한 형태로 보이길 원했다”고 말했다.
전 PD는 뉴스에서 캥거루족을 다루면서 개인을 탓하는 부분이 많은 것을 언급하며 “원래는 독립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다. 본인이 원치 않아서 독립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생활비나 월세 문제 등 자의보단 타의로 캥거루족이 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과거 ‘나 혼자 산다’가 방송을 시작했을 당시, ‘1인 가구’나 ‘독거’라는 말이 안좋은 쪽으로 생각됐다. 그런데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고, ‘나 혼자 산다’를 통해서도 혼자서 잘 지내는 모습을 13년간 보여주니 특이한 것이 아니라는 게 일상에 녹아들지 않았나. 캥거루족의 관찰 예능 역시 대중으로 하여금 ‘가족들과 같이 사는 사람들도 많네’, ‘우리랑 비슷하네’ 하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었다. 캥거루족이라는 단어가 뉴스에서만 보이는 단어가 아니라 삶에 익숙한 단어가 되고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받아들여지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출연자들이 상당히 솔직하다. 특히 박해미-황성재 모자는 방송을 통해 갚아야 하는 빚이 15억원이라는 것을 밝히는가 하면 황성재의 이부형까지 공개했다. 조심스러운 가정사까지 방송에서 거침없이 공개 하는데는 악마의 편집을 하지 않을 것이란 제작진에 대한 믿음과 프로그램을 향한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전 PD는 “화제성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악마의 편집도 없다. 다만 출연자를 무조건 감싸려고 한다기 보다는 맥락을 메운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박해미, 황성재 모자의 대화를 보면 싸우는 것 같이 보이는데 사실은 서로를 상당히 아낀다. 표현 방식이 다를 뿐 그 안에는 애정이 있더라.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이런 맥락을 시청자분들도 느낄 수 있도록 짚어주려 노력했다”고 연출 방향을 들려줬다.
황성재의 이부형을 공개한 것 역시 자연스러운 맥락에서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란다. 전 PD는 “이사 했으니 집들이를 하면 좋겠다고 하더라. 첫 손님으로 누구를 부를지 이야기해보니 자연스레 답이 나왔다. 이사를 가면 역시 제일 먼저 초대하는 사람은 가족 아닌가. 박해미, 황성재 모자도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밖에서 보면 복잡한 사연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들에겐 그냥 가족이다. 황성재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도 형이라더라. 저도 (시청자분들이 느끼는 것 처럼)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는데 오히려 편하게 해줘서 (지레짐작한 것에 대해) 반성을 많이 했다”고 덧붙였다.
전 PD는 박해미-황성재 모자 외에도 모든 출연자들에게 애정이 있었다. 전 PD는 “출연 연예인과 가족들을 모두 만나봐야하니 섭외 과정이 오래 걸렸다. (여러번 만나면서) 부모님께 자식으로서의 모습을 들으며 매력을 많이 알게 됐다. 부모님들에게도 애정이 많이 간다. 다들 정말 따뜻하다”고 말했다.
가장 마음이 많이 가는 부모님으로는 지조네 부모님을 꼽으며 “돈벌이가 시원치 않은 아들도 유쾌하게 끌어안는 것 뿐 아니라 자주 보는 제작진 이름도 외우는 등 마음을 많이 써주신다”고 이야기했다.
또 자녀들 중 가장 마음이 많이 쓰이는 사람은 황성재란다. 전 PD는 “‘박해미 아들’이라는 그늘에 갇히는 게 아닌지 고민이 많더라. 그런 이미지로 소비되지 않도록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찰 예능은 방송에 익숙한 연예인에게도 쉽지 않은 장르다. 이에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관찰 예능에는 으레 ‘대본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붙는다. 전민경 PD는 “대본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며 웃었다.
“만약 한 사람만 출연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대본을 주고, 디렉팅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부모님들도 같이 출연하시잖아요. 솔직히 할 수 있다면 프로그램 만들기 편하겠지만 대본은 커녕 디렉팅 하기도 힘들어요. 안되더라고요. 초반부터 그렇게 접근하려는 마음을 접었습니다. 방송 소재도 출연자분들이 주세요. 부모님들은 자녀들에 대한 불만, 자녀들은 부모님에 대한 불만을 말하면서 ‘이런 이야기가 하고 싶다’고 저희를 소통창구로 생각하시고 말씀해주면 그걸 촬영합니다. 제가 개입해 말씀드리는 부분이라면 ‘어머니 지난 번에 어떤 잔소리 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라고 까먹으신 내용을 이야기해드리는 정도예요.”
3월 말 방송되는 10회 즈음에는 새 가족이 투입된다. 바로 가수 홍서범, 조갑경 부부와 두 딸이다. 기존 출연자들은 자녀들이 연예인이었다. 그러나 이 가족은 부모님만 연예인이고 자녀들은 일반인이라 새로운 그림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에게는 어떤 케미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전 PD는 “차이점이라면 부모님이 더 재미있으시다는 정도다. 사실 잔소리를 들었을 때 나오는 자녀들의 리액션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비슷하지 않나. 리얼한 반응이 나온다”면서 “막내 따님이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한다. 부모-자녀인 동시에 선후배 관계인거다. 박해미-황성재 모자와 비슷한 경우지만 조금 다르다. 그 부분이 재미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어 “황성재는 실제로 데뷔해서 일을 하고 있고 본인 세상을 만들고 있는데 엄마의 잔소리가 자기 세상을 침범할까봐 반발심을 먼저 가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알아. 내가 더 잘 알아. 엄마랑 나는 방식이 달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홍서범, 조갑경 부부 막내딸은 아직 데뷔를 하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듣고 수긍은 한다. 맞는 말이라고 듣지만, 실천은 하지 않는다. 딸만의 틱틱거림이 있어서 관계가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전 PD가 본 조갑경은 ‘과보호 캥거루’란다. 전 PD는 “홍서범은 오히려 쿨한데 조갑경은 과보호가 있다. 금전적으로든 라이프 스타일로든 과보호 한다. 성인인데 통금이 있다. 밤 10시, 11시가 되면 계속 전화를 하더라. 자녀들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집에서 기다리는 엄마의 스트레스도 있다. 첫째 따님이 어학연수를 갔을 당시엔 걱정이 돼 조갑경이 따라가기도 했다더라”고 에피소드를 전해 궁금증을 더했다.

추가로 합류시키고픈 인물이 있을까. 전 PD는 파일럿과 정규 방송 시작 전 제작발표회에서 언급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가수 박재범을 다시 한번 언급했다. 전 PD는 “여전히 모시고 싶다. 개인적으로 팬이기도 하지만 힙합의 아이콘인 분이 캥거루족이고, 꽃무늬 이불에 장판이라는 괴리감이 느껴지는 집에서 산다더라. 매력적이지 않나. 사실 연락하기도 했는데, 미국에 계시는 시간이 많아 쉽지 않더라”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출연자들 못지 않게 스튜디오 패널들의 역할도 만만치 않다. 전 PD는 “일반적으로 관찰예능에서 스튜디오 패널들은 편집적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 홍진경은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더 재미있다. 출연자들을 다 커버해줄 수 있는데 ‘짜증난다’, ‘싫다’ 등 진짜 부모의 입장에서 날 것의 리액션을 하기 때문에 더 재미있더라. 타고난 재능이 있는 분”이라고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하하에 대해서는 “열정과 낭만이 가득한 분이더라. 아들들이 뻘짓을 해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나도 그랬다’, ‘나도 방탕했다’고 이해해주는데 그게 오래가지 못하는게 재미있다. 아들들 편을 드는 역할로 섭외했는데 부모가 되니 자녀들 생각이 나서 출연자들의 영상을 보고 욱하는 마음이 든다더라. 아들과 부모 입장을 오가는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싱글인 개그맨 남창희는 이야기의 맥을 짚어주는 역할을 한단다. 전 PD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맥락을 짚어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자녀가 부모님 병원을 따라가도 어디 아프신지 들어서 아는 것과 같이 살기 때문에 아는 건 다르다. 이런 부분은 저희도 캐치를 못했는데 ‘이건 같이 살아서 아는거다’라며 캥거루족의 좋은 점을 짚어주더라. 똑똑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2013년 MBC ‘나 혼자 산다’가 자취를 하는 트렌드에 맞춰 첫 방송됐다. 12년이 지난 지금 ‘캥거루족’이 트렌드로 떠오르자 ‘다 컸는데 안 나가요’가 나왔다. 트렌드가 바뀌는데는 또 얼마나 걸릴까. 전 PD는 “프로그램 PD로서는 이게 오래 갔으면 좋겠지만, 한 개인으로서는 빠르게 이 시대가 끝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꽤 오래 갈 것 같다”고 봤다.
이어 “밖에서 살다가 본가에 돌아온 친구들을 보면 돈을 많이 아낀다더라. 집값은 떨어질 일이 없어보이고, 경제 상황은 좋아지지 않고 있다. 갖출게 많아져서 ‘어른’이 되는게 점점 더 쉽지 않아진다. 하루 빨리 ‘캥거루족’이 자의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다 컸는데 안 나가요’는 전 PD의 첫 메인 연출작이다. 파일럿에 이어 정규 편성되며 화제성을 인정받았다.
전 PD는 “메인 PD는 진짜 버겁다는 생각을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팀’이라는 게 생기니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이 프로그램을 함께 하는 PD, 작가만 30명이다. 촬영 감독님들까지 하면 50-60명이 진심을 다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힘들긴 하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게 든든하다. 일이라는게 ‘밥벌이’ 아닌가. 이들의 밥벌이를 걱정할 필요 없도록 해주고 싶단 책임감으로 임하고 있다. 버겁지만 감사하고, 기회가 된다면, 믿어주는 만큼 계속 함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전 PD는 “저는 사범대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PD가 됐다. PD를 하기로 마음 먹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왕이면 자신의 이야기를 제게 담아달라고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친절하게 담고 싶다는 마음”이라며 출연자들에 대한 애정으로 끝까지 프로그램을 책임지겠다는 마음가짐을 드러냈다.
‘다 컸는데 안 나가요’는 매주 토요일 오후 8시 20분 MBC에브리원과 MBN에서 방송된다.
[김소연 스타투데이 기자]